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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악원, 여성예술인 3인의 남도소리

국립국악원, 여성예술인 3인의 남도소리

남도소리의 현재진행형 – 여성 예술인 3인이 빚어낸 전통의 재구성

우리는 종종 “전통”을 과거의 언어라 정의합니다. 그러나 어떤 언어는 특정 시간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남도의 소리, 그 속의 절절한 민요와 힘찬 판소리, 그리고 삶과 죽음을 잇는 굿은 그렇게, 여전히 오늘을 사는 음악입니다. 2025년 6월,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에서 펼쳐지는 공연 ‘삼부작 – 남도소리로 세 갈래의 작품을 그리다’는 이 ‘살아 있는 전통’을 신중하고도 기품 있게 무대 위로 불러냅니다.

이 공연은 단순한 레퍼토리의 집합이 아닙니다. 세 명의 여성 국악인—김나영(판소리), 김은수(거문고), 서은영(가야금)—이 뿌리 깊은 남도소리를 재구성하고 해석한 하나의 서사입니다. 세 개의 예술 인생이 엮여 내딛는 발걸음은, 전통 예술이 되묻는 질문들과 그 속에서 살아나는 현재의 감각을 무대 위에 펼쳐냅니다.

슬픔을 품은 노래, 그러나 희망을 잊지 않는 소리

공연은 ‘달타령’, ‘봄노래’, ‘동해바다’로 시작되며 남도 민요의 다채로운 얼굴을 보여줍니다. 흔히 민요에서 느끼는 슬픔은 이 공연 안에서 유연하게 풀려 나갑니다. 절망보다는 그 속에 묻힌 웃음과 기다림, 언젠가는 도달할 위로에 더 집중하는 구성입니다.

민요의 정서를 단지 향수의 대상으로 감상하지 않고, 정서적 회복의 경험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공연이란 점에서 이 무대는 특별합니다. 그건 곧 우리 삶 속에서 감정을 어떻게 정리하고 나아갈 것인가, 하는 질문이기도 하니까요.

문자와 서사의 틈, 거문고와 가야금으로 채우다

‘적벽가’ 중 ‘적벽대전’ 대목은 이 공연의 중심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운명, 권력, 그리고 절규를 전통 악기와 판소리로 풀어내는 이 장면은, 오페라와 연극, 서사시가 동시에 살아 움직이는 듯한 감각을 전합니다. 거문고가 바람의 흐름이 되고, 가야금이 불꽃 속의 패배로 뉘우치며, 판소리는 들판을 울리는 외침으로 변모합니다.

소리와 악기, 이야기가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유기체로 움직이는 이 총체적 예술은 관객에게 작지 않은 충격을 남깁니다. 이토록 혼합적인 예술 언어는 우리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형식’에 대한 고정관념을 되묻습니다.

굿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 연주의 언어로 감정을 씻다

공연의 마지막 장면은 진도씻김굿 중 '제석거리'를 바탕으로 구성됩니다. 전통적 의례 형식을 해체하고, 신과 인간의 경계마저 흐리는 실험은 익숙함을 깨뜨리며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씻김’은 단지 죽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의 우리에게는 지나간 감정, 말하지 못했던 상처, 미뤄두었던 작별에 대한 치유일 수 있습니다. 이 공연은 국악이라는 장르가 어떻게 현대인에게 감정적 정화의 언어로 작동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직관적인 사례입니다.

지금 우리가 감각해야 할 ‘전통’은 무엇일까요? 과거의 것을 곧이곧대로 옮긴 전시물이 아닌, 현재의 질문과 감각으로 다시 태어나는 소리라면, 그것은 정말 오늘의 문화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전통은, 기억의 보존이 아니라 감각의 갱신입니다. 세 명의 국악인은 누구보다 차분하지만 단단하게 이 명제를 증명했습니다.

이 공연을 통해 우리가 일상에 담을 수 있는 질문은 다음과 같을지도 모릅니다. “내 안의 소리는 어떤 리듬으로 울리고 있을까?”, “나는 무엇으로 삶을 씻겨내는가?”
남도소리의 언어로 다시 바라보는 하루. 우리의 감정에도 그런 ‘삼부작’의 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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