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물다양성은 풍요의 조건이 될 수 있을까?
─ 지속 가능한 농업과 생태계 복원의 간극을 좁히기 위한 과학의 목소리
우리가 매일 접하는 식탁 위의 음식은 과연 환경과 공존하고 있을까요? 기후 위기와 토양 황폐화, 생물다양성 붕괴가 가속화되는 시대에 농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고민은 어느 때보다 절박합니다. 최근 스위스에서 진행된 연구(Elsevier, Agriculture, Ecosystems & Environment, 2025)는 이러한 질문에 중요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이 연구는 주요 곡물 재배지에서 시행된 친환경 농법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며, 단순한 ‘농약 줄이기’ 이상의 체계적 접근의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연구 결과는 우리가 오랫동안 ‘정답’이라고 여겼던 지속 가능한 농업 실천 방식이 실제 현장에서 얼마나 복잡하고 지역적 특성에 따라 다르게 작용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어떻게 농사를 지을 것인가’라는 질문 못지않게, ‘어디서, 누구와 함께, 어떤 자연환경 안에서 지을 것인가’를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 지역 맥락에 따라 달라지는 생물다양성 회복 효과
스위스 전역의 44개 농가를 분석한 결과, 야생화 경작지 도입과 농약 사용 감축 등 대표적인 ‘농생태학적 관리(agroecological management)’ 방법이 식물의 다양성은 분명히 높였지만, 해충의 포식자(거미, 기생벌) 개체 수 증가나 해충 억제 효과로는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특히, 토양성 딱정벌레와 같은 지상성 곤충군은 증가했지만, 거미류나 기생성 곤충류는 차이를 보이지 않았고 농작물 수확량 또한 관행 농업보다 낮은 수준에 머물렀습니다.
이는 환경의 복잡성과 생물군 반응의 차이가 단순한 일반화된 친환경 농법으로 해결되지 않음을 시사합니다. 농업 환경과 생태계는 ‘정해진 해법’보다는 지역 기반의 섬세한 전략이 필요함을 과학적으로 검증한 셈입니다.
📉 농약 없는 농업? 해충 억제는 여전히 미완의 과제
‘더 적은 농약 → 더 많은 포식자 → 해충 감소’라는 순차적 논리는 현실에서는 그다지 단순하게 작용하지 않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포식자의 개체수가 반드시 해충 억제로 이어지지 않았으며, 이에 따라 작물 수확량에도 긍정적 효과를 주지 못했습니다. 이는 생태계 내 상호작용이 얼마나 복잡한지를 말해주는 증거입니다.
지속 가능성을 목표로 한 친환경 농법이 해충 방제 측면에서 ‘즉각적인’ 대안을 제공하지 못했지만, 이 또한 장기적 토양 건강, 수질 개선, 생물다양성 보전과 같은 구조적 이익을 고려하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결과입니다. 단기 생산성만을 기준으로 지속 가능한 농업을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 다양성 증진은 무의미하지 않다 – 생태계 지표로서 식물 다양성의 가치
이번 연구는 생물다양성 증진 효과 중 식물군의 다양성 증가에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음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야생화 경작지(wildflower strips)는 특히 경작지 주변 생물군집의 다양성을 높이는 데 기여했고, 장기적으로는 생태계 내 포식-피식 균형을 회복할 기초 환경을 조성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이러한 식물 다양성은 생태농업의 ‘잠재적 지표’로 활용될 수 있어, 각국 농업정책에서 방향성을 가늠하는 중요한 기준이 될 것입니다.
🌍 단일 해법이 아닌, 지역 기반 맞춤 관리 전략 필요
연구진은 “농생태학적 기법은 생물다양성과 생산성 사이의 균형을 추구하지만, 그 효과는 작물 종류, 경관 구조, 물리적 환경에 따라 달라지므로 획일적 적용은 어렵다”고 조언합니다. 이는 곧 지속 가능한 농업 실천이 기존 관행농업을 단순히 ‘덜 해로운 방식’으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작물-토양-기후-생물군이 얽힌 지역 생태계 전반에 대한 이해와 복합적인 설계가 전제되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유럽연합(EU)의 '아그리-기후환경제(AES)'나 FAO의 '지속 가능한 식량·농업 지침'에서도 최근 들어 생태계 복원력 향상을 위한 **지역관리형 정밀농업(precision ecological farming)**과 같은 방식의 도입을 권장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이번 연구는 분명히 알려줍니다. 친환경 또는 유기농이란 딱지가 붙었다고 해서 그것이 곧 ‘완전한 해답’은 아니라는 것, 그러나 그 과정 자체는 생태계 회복에 있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초석이라는 것입니다.
지속 가능한 식량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다음의 실천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 내가 사는 지역의 로컬푸드 소비를 확대하고, 제철·재래종 농산물을 우선적으로 선택하기
- 친환경 또는 전환기 농가를 후원하거나 관련 시민단체의 교육·캠페인에 참여
- 농업 관련 정책(친환경 보조금, 농약 규제 개선 등)에서 생태적 관점을 담은 선택과 목소리를 내기
- 『우리 몸이 먼저 알고 있다 (강인숙 저)』, 『지속 가능한 농업의 미래 (FAO 국제보고서)』 등 신뢰할 수 있는 자료를 통해 학습하고 주변에 나누기
기후위기 시대. 건강한 토양은 단지 농업 문제 이상의 삶의 조건입니다. 우리 밥상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요인들을 바로 보고, 그 해결책을 과학과 현장의 통합적 시각에서 하나하나 짚어나갈 때,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든든한 먹거리 시스템을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