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재도약을 위한 제도 실험 – 대학 협력을 통한 폭력 예방, 돌봄, 경력 개발의 가능성
서울시여성가족재단과 숙명여자대학교 간의 최근 업무협약은 여성의 삶에 밀착된 세 가지 축, 즉 폭력 예방, 아동 돌봄, 그리고 IT 분야에서의 여성 경력 개발이라는 주제를 통합적으로 다루면서 주목을 받고 있다. 이처럼 한 지자체 재단과 대학이 손을 잡고 사회적 약자 보호, 사회서비스 확대, 일자리 재설계까지 총망라한 실험은 현 시점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리고 어떤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한지를 성찰해볼 시점이다.
지속가능한 안전교육과 디지털폭력 대응의 현실
대학 내 ‘찾아가는 폭력 예방 교육’을 통해 캠퍼스 문화의 안전성을 높이려는 시도는, 단순 교육을 넘어서 제도 기반 개선을 시사한다. 특히 디지털 성범죄와 같은 신종 피해 양상에 대한 대응은 공감 능력보다 법과 기술의 결합이 절실하다. 이를 위해 서울디지털성범죄안심지원센터와의 연계는 시민 대상 추상적 캠페인을 넘어, 실질적 피해자 보호 체계를 제도화하려는 노력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체계가 서울 지역을 벗어난 광역 범위로 확산되기 위해선 중앙정부 차원의 법·재정 지원, 대학별 의무화 조치가 함께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돌봄의 공공성과 청년의 노동 참여 문제를 잇다
대학생들이 아동돌봄 프로그램의 제공 주체로 참여하는 구조는 청년 일자리와 돌봄 사각지대를 동시에 해결하려는 복합 정책 실험으로 읽힌다. 특히 고령화와 저출산이 심화되는 사회에서 돌봄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닌 공적 책임의 과제다. 실제로 서울의 일부 자치구에서는 시범적으로 대학생 연계 돌봄 활동이 운영돼 왔지만, 고용의 지속 가능성과 품질 관리라는 측면에선 숙제가 남는다. ‘대학생=비전문 돌봄 인력’이라는 시각도 존재하는 만큼,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전문 교과와 교육, 공공의 평가 기준이 마련돼야 이 구조는 장기 지속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다.
‘우먼테크’의 확장 가능성과 경력단절 여성의 경로 다변화
여성의 IT 분야 진출을 위한 ‘우먼테크 교육 플랫폼’의 홍보는 단순한 참여 유도에서 나아가, 젠더 격차가 뚜렷한 과학기술 직군에 여성 진입을 촉진하는 노력을 제도화하는 계기로 주목받는다. 여성 고학력자 비율이 남성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높은 상황인데도, STEM 분야 여성 종사자는 여전히 OECD 평균에 못 미친다. 특히 IT·AI 중심으로 재편되는 노동시장 변화 속에서 여성에게 단절 없는 커리어 경로를 제공하려면 단기 교육 이수에 그칠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실질적인 직무 전환과 연계를 보장하는 취업 플랫폼의 이음이 필요하다. 숙명여대 졸업생 중 현직 전문가와의 세미나는 이런 실무 연계를 돕는 좋은 시작점이지만, 전국 단위 우먼테크 멘토 매칭 체계 같은 구조화된 모델이 함께 논의될 필요가 있다.
정책 실험의 사회적 수용성과 확산 조건
이번 협약은 결국 지자체-대학-현장기관의 삼각 협력 구조 속에서 지역전문성의 재설계 실험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도시 중심의 전략이라는 한계도 존재한다. 서울시유형의 정책들이 전국 단위로 확산되기 위해서는 농어촌과 중소도시 맥락에서의 여성 정책 모델 디자인이 따로 요구된다. 예컨대, 지방 여성들은 IT 경력 개발이나 안전 교육에 접근할 디지털 기반 자체가 부족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균형있는 접근을 위해선 중앙정부와 교육부, 보건복지부가 지방 거점 대학들과 연계한 맞춤형 여성 플랫폼을 설계해야만 한다.
사적 돌봄의 공공 전환, 성 평등 경력 구축의 제도적 실험이라는 점에서 이번 협약은 작지만 단단한 의미를 품는다. 그러나 진정한 변화는 제도와 의식, 교육과 일자리, 보호와 성장이라는 각기 다른 의제들을 지속적이고 유기적으로 연결해 나갈 구조화 속에서만 가능하다. 이는 단도직입적인 ‘여성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지속 가능하고 포용적인 사회 시스템’으로의 전환 요구이기도 하다.
이러한 움직임이 일회성 시범에 그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어떤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을까? 시민은 이용자로서 머무르기보다 정책의 감시자·제안자 역할을, 대학은 공급기관이 아닌 실험과 순환의 공동체로 진화할 자리에 있고, 지역사회는 이 과정을 안전하게 품어내는 오래된 존재의 가치를 다시 묻는 시점에 서 있다. 이들의 움직임이 ‘누구의 일상’을 바꾸고 있는지, 우리는 끊임없이 주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