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인간 사이, 다시 묻는 삶의 자리 – ‘아나스타시아’의 목소리를 따라가는 문화적 귀소본능
도시에 사는 우리는 늘 바쁘다. 일과 인간관계, SNS 속 정보의 바람결에 휘청이는 가운데, 문득 멈춰 서보면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허공을 떠돈다. 그런 우리 앞에 한번쯤 비현실처럼 등장하는 이름이 있다. 바로 블라지미르 메그레가 기록한 ‘아나스타시아’다. 그리고 이 이름이 오는 10월, 경기도 연천 통일미래센터에서 현실로 우리 곁에 다가온다.
러시아 시베리아의 깊은 숲에서 만난 신비로운 여인, 아나스타시아를 통해 자연과 인간, 우주와 삶의 연관성을 깨달았다는 메그레의 이야기는 단순한 판타지를 넘어 수많은 독자의 실존적 물음에 닿았다. 이번 강연은 그가 직접 전하는 자연의 지혜이자, 우리가 무엇을 잊고 있었는지를 되새기게 하는 조용한 혁명이다.
우리가 잊고 있던 자연의 언어를 다시 듣다
아나스타시아 시리즈는 명확한 종교도 철학도 아니지만, 한 가지 뚜렷한 메시지를 건넨다. “인간은 자연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것. 메그레가 이번 연천 강연에서 전할 내용은 바로 이 고전적인 진리를 현대적 언어로 풀어낸 것이다. 책에서 펼쳐지는 내용은 실로 낭만적이다. 숲을 집 삼고, 동물들과 소통하며, 태양과 달과 교감하는 삶.
하지만 그 낭만 속에는 철학적 외침이 있다. ‘더 빠르고, 더 많은 것’을 좇는 문명은 결국 인간이 누구인지를 잊게 만든다는 점이다. 메그레가 말하는 ‘귀농’, ‘귀산촌’은 단지 물리적 이주를 뜻하는 게 아니다. 그것은 내 마음 속 ‘잃어버린 자연’을 되찾는 사유의 전환이다. 도시인의 피로는 단지 업무량 때문만이 아니다. 자신이 자연의 일부라는 감각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시대의 피로 위에 얹는 사색의 초대장
이번 독자대회는 단순한 팬미팅이 아니다. 전국에서 모인 독자들이 아나스타시아를 매개로 서로의 삶을 나누고, 공동의 가치를 확인하는 시간이다. 이곳에서 나누는 한마디, 눈빛, 침묵은 어쩌면 지금의 도시에서 느껴보지 못한 진짜 '교류'일지도 모른다. 관심 있는 이들은 비건식으로 숙식이 제공된다는 점에서도 눈여겨볼 만하다. 소비 아닌 경험, 빠름보다 느림을 택하는 선택. 이 또한 새로운 삶의 리듬을 모색하는 문화의 실험이다.
지역과 세계를 잇는 숲의 언어
강연의 배경이 되는 연천, 그리고 주최기관인 ‘한씨가원’의 존재도 주목할 만하다. 3000여 평의 땅에 나무를 심고, 논과 들깨밭을 가꾸며 생태적 삶을 실현해온 이 공동체는 ‘작은 전환’이 모여 ‘큰 내일’을 만든다는 것을 증명한다. 유럽의 생태정착촌이나 북미의 지속농업 커뮤니티처럼, 한씨가원은 한국적인 방식으로 자연과 문명을 화해시키려는 실천적 문화 모델이다. 이 강연은 단지 메그레 혼자의 목소리가 아니라, 이 땅의 정체성과 미래를 묻는 또 하나의 대화다.
지금, 우리가 감각해야 할 문화는
‘문화’는 결코 미술관 안에만 있지 않다. 산속의 들꽃에 시선을 머무는 마음, 늦은 저녁 바람결에 귀 기울일 줄 아는 감성이야말로 오늘의 문화적 내공이다. 메그레의 강연과 아나스타시아 시리즈는 그러한 감각을 일으킨다. 그것은 힐링 열풍이나 자연친화 마케팅 너머, 삶의 본질을 물으며 새로 쌓아가는 내적 인프라스트럭처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귀소본능’을 지닌 존재인지도 모른다. 이 문화적 귀소본능은 이제 도시라는 껍질을 깨고, 자신만의 숲으로 돌아가려 한다.
당신의 일상 사이에 ‘작은 숲’을 들여놓아보세요. 주말마다 잠시 핸드폰을 꺼두고, 나무 한 그루를 알아가는 마음의 여유를 갖는 것은 어떨까요. 또는 메그레의 책 한 권을 들고 카페 대신 숲으로 향해보는 건 어떨는지요. 오늘의 삶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그 순간, 아나스타시아가 속삭였던 자연의 언어가 들려올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