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 예술이 피어나는 도시 – ‘화인을 담다 ; 피어나다’가 전하는 손끝의 문화학
도시는 기억을 담는 그릇이다. 거리의 표지판, 무심코 발을 딛는 골목길, 그리고 누군가의 손끝에서 완성된 작은 물건들까지. 이 모든 것은 한 지역만의 지리적, 감각적 정체성을 구성한다. 2025년 6월, 화성시 동탄복합문화센터 아트스페이스에서는 그런 도시의 결을 만날 수 있는 깊은 전시가 열린다.
‘화인을 담다 ; 피어나다 blooming’. 이름부터가 마치 한 편의 시처럼 들리는 이 전시는 화성시문화관광재단 주관 아래 생활예술가 37인이 함께 빚어낸 다층적인 이야기다. 단순한 수공예 아트마켓을 넘어, 지역의 삶과 문화가 어우러진 생활미학의 기록이자 제안이다.
‘화인’이라는 그릇에 담긴 이름 없는 장인들의 하루
‘화인’은 단지 한 채의 공방이 아니다. 이곳은 이름 없이 흘러가는 손길들, 생활 속 자투리 시간에 깃든 창작의 기운이 모이는 그릇이다. 가죽을 꿰매는 시간, 도자기의 물성을 느끼는 체온, 실과 바늘이 엮는 감정의 서사까지. 공예가의 손끝은 삶을 디자인하는 또 하나의 언어가 된다.
이번 전시에서는 2023년의 ‘화인을 담다’, 2024년의 ‘스며들다’를 거쳐 2025년 ‘피어나다’로 이어지는 기획 연작이 소개된다. 단순한 과거 회고가 아니라, 해마다 성장을 이룬 예술가들의 ‘삶의 발아’가 드러나는 서사적 연출이다. 여기엔 전문 예술가와 생활문화인을 구분짓지 않는 경계 허물기의 의지가 깃들어 있다.
도시를 가꾸는 것은 공무원이 아니라 예술가다
화성시문화관광재단은 이번 전시를 통해 시민운영자라는 독특한 플랫폼을 실험해왔다. 이들은 단지 작품을 만드는 창작자에 머물지 않고, 전시와 시장, 문화 확산 활동까지 동시대 도시 문화의 실질적 운영자로 기능한다.
화성시처럼 급격한 도시화와 정체성 갈등을 겪는 지역에서, 이러한 ‘생활 예술 공동체’는 의미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 ‘작지만 구체적인 불편을 해결하고’, ‘익명의 일상에 감정을 불어넣으며’, ‘가족 단위의 관람자에게도 여운을 주는 공간’을 기획하는 것. 이는 정책이 아닌 정서의 회복을 이야기하는 방식이다.
문화는 더 이상 소비재가 아니라 시민성과 공동체 회복의 매개자가 되는 흐름. 화성의 시도는 지금, 전국으로 뻗어나갈 조짐이다.
지금 우리가 감각해야 할 문화는 무엇일까요?
이 전시는 거창한 레이블 대신 ‘생활 속 예술’이라는 친숙함으로 관객과 소통한다. 시민기획자 최윤희 작가의 말처럼, “시민들과 예술의 다양함과 친근감을 공유하는 것”은 단순한 상품진열회가 아닌,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의 발현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전시를 통해 어떤 감각을 일상으로 가져올 수 있을까? 답은 거창한 철학이 아니라 작은 선택에 숨어있다. 손으로 만든 도자기 한 점을 식탁 위에 올리는 일. 가까운 공방에서 취미 클래스를 수강하며 타자와 나누는 대화를 시작하는 일. 또는, 동네 주민이 만든 작품에 ‘좋아요’를 붙이는 일조차도.
문화는 강렬한 인상이 아닌 오래가는 습관에서 출발한다
이번 화성 시민운영자 기획전은 예술을 ‘구경하는 것’에서 ‘함께 만들어가는 것’으로 전환해낸 유의미한 사례다. 도시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묻는다 – 당신의 손끝은 무엇을 빚고 있나요? 또, 당신의 일상 속 문화를 피워낼 여백은 어디인가요?
가볍게 떠올려 보자. 나의 동네, 나의 취미, 나의 공간은 얼마나 나다운가? 무심코 지나치는 골목의 표지판 뒤에 어떤 이야기를 새길 수 있을까? 지금 가까운 문화전시 하나를 찾아 따스한 시간을 누려보자. 그곳에서 마주할 수 있는 건 결국, 조금은 불완전하지만 더 인간다워지는 ‘나 자신’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