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토니상, 테크놀로지와 다양성의 교차로에서 다시 쓰는 브로드웨이의 스토리텔링 문법
뉴욕 무대 예술계의 최고 권위인 토니 어워드가 2025년, 또 한 해의 브로드웨이 정점을 수놓았다. 그러나 올해 시상식은 단순한 연극적 성취의 축제를 넘어, 공연 예술이 디지털 감수성과 다양성, 그리고 문화적 정체성을 어떻게 재조명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적 이정표였다. '로봇의 사랑'을 담은 한국 뮤지컬에서부터 쿠바 리듬의 재구성, 고전의 디지털 반역까지—이번 토니상은 우리가 익히 알았던 극장의 언어를 전복시키는 파격과 통찰로 가득했다.
이 현상은 우리 시대의 어떤 모습을 반영하고 있을까요? 그리고 예술은 어떻게 그 사회 변화를 읽고, 그 너머로 건너갈 수 있을까요?
1. 포스트휴머니즘 서사의 도약 – “Maybe Happy Ending”의 수상 의미
‘최우수 뮤지컬 북’ 부문 수상작인 「Maybe Happy Ending」은 한국 창작물로, 인간성을 잃어버린 시대에 감정을 배우는 두 로봇의 이야기를 통해 포스트휴머니즘적 감수성을 섬세하게 펼쳐낸다. 기계와 인간의 경계는 오늘날 AI 기술의 급부상과 맞물려 예술에서도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으며, 이 작품은 기존 뮤지컬 문법을 따르면서도 그 서사를 철학적으로 확장한다. 팝적인 정서와 잔잔한 멜로디, 그리고 인간 존재 본질에 대한 사색은 라이오타르의 ‘포스트모던 조건’처럼 이질성 속 감동을 선사하며, 원작이 한국에서 출발했다는 점은 "글로컬 창작 예술"이 글로벌 시장을 어떻게 설득하는지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이다.
2. 몸과 리듬, 국가 정체성의 미학 – ‘Buena Vista Social Club’의 무대 혁신
3관왕을 거머쥔 『Buena Vista Social Club』은 단순한 월드뮤직 뮤지컬화가 아니라 다큐멘터리성과 무대 예술의 교차지점을 직접적으로 탐구했다. 안무가 Patricia Delgado와 Justin Peck는 쿠바 전통사회의 육체 퍼포먼스를 브로드웨이 스타일의 제스처로 재매핑하며, 문화 교류의 역학을 무대에 구현했다. 이 뮤지컬의 사운드 디자인은 마르코 파구이아의 오케스트레이션으로 더욱 강화되며, “라이브함”의 흔적 — 숨소리, 발자국, 악기의 질감 — 이 강조됨으로써 오늘날 디지털화된 음향 환경에 대한 비판적 대안을 제시한다. 이는 철저히 체화된 역사성을 소리와 무브먼트로 환기하는 ‘기억의 공연’이기도 하다.
3. 무대 미학의 전환점 – 빛과 스크린이 만든 ‘Sunset Boulevard’의 흑백 리얼리즘
이번 시상식에서 ‘조명 디자인’ 부문을 수상한 Jack Knowles의 「Sunset Boulevard」는 조명 그 자체가 셋과 배우, 의상을 통합하는 ‘서사의 연출자’ 역할로 부상했음을 보여준다. 흑백영화의 톤앤무드, 그리고 강조된 ‘피의 빛’은 고전 스타 시스템과 오늘날 디지털 재현 기술의 충돌과 리믹스를 무대 위에 펼쳐놓는다. 특히 무대 장치 없이 스크린과 조명만으로 무대를 완성해내는 이번 프로덕션은 비평가 제시 그린의 말처럼 “서사의 무게 대부분을 조명이 짊어진 작품”으로 기록될 것이다. 이는 전통적 무대연출 방식에 대한 도전이자, 관객의 시지각적 체험구조에 대한 새로운 제안이기도 하다.
4. 비주류 서브컬처와 꿈의 스펙트럼 – ‘Little Shop of Horrors’ 출신 크리에이터의 약진
이번 남우주연, 조연 부문에 대거 이름을 올린 배우들이 브로드웨이 오프무대 「Little Shop of Horrors」 출신이라는 사실은, 비주류 서브컬처 플랫폼이 전통 무대 예술계로 침투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다양한 젠더, 인종 정체성의 배우들은 과거보다 훨씬 다채롭고 복합적인 역할을 도전 받으며, 브로드웨이가 여전히 ‘꿈의 무대’로 남아 있으면서도 더 포용적인 생태계로 나아가는 중임을 보여준다. 이는 단지 캐스팅과 수상 결과의 문제를 넘어, 누가 예술을 만들고, 어떤 이야기가 ‘주류’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으로 우리를 이끈다.
5. 공연예술의 디지털 씬 – ‘스트레인저 씽스’와 공연 전 다큐멘터리 시대의 도래
「Stranger Things: The First Shadow」는 공연이 시작하기도 전에 메이킹 다큐멘터리를 스트리밍한 초유의 사례로 기록됐다. 이 시도는 단순한 마케팅 전략을 넘어서, 콘텐츠가 태어나기도 전에 소비되는 사이클의 현실을 반영한다. 퍼포먼스 전에 디지털로 ‘보기’를 통해 ‘이해’하는 이 흐름은 공연예술의 즉시성과 몰입성을 어떻게 지속할 것인가에 대한 도전을 제기하며, 전통적인 '관람자는 몰입으로 참여한다'는 전제 자체가 흔들리고 있음을 시사한다.
2025년 토니상은 단순히 화려한 무대의 열기가 아닌, 오늘날 공연예술의 존재론적 전환기를 집약적으로 반영한 사건이었다. 무대는 더 이상 물리적 공간만이 아니라, 기억, 기술, 신체성, 서브컬처, 글로벌 문화와 소수 정체성이 교차하는 전쟁터이며, 우리는 그 안의 복합성을 해독할 수 있는 문화적 언어를 배워야 한다.
우리는 이제 다음을 고민해야 한다. “조명과 사운드, 무대 디자인은 스토리텔링의 도구인가, 주체인가?”, “디지털 미디어에 익숙한 관객을 무대로 끌어올 방법은 무엇인가?”, “글로벌 무대에서 로컬 정체성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이 글을 읽은 독자라면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이 흐름에 참여할 수 있다:
- 토니 수상작 또는 노미네이트 작품의 국내 상영/상연 정보를 찾아 직접 감상하고, 다른 이들과 감상을 공유하라.
- 『브로드웨이의 역사와 사회』, 『포스트휴먼 연극과 기술 시대』 등의 이론서나 비평서를 통해 공연예술을 이론적으로 탐구하라.
-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서 작품에 대한 의견을 나누며, 나만의 문화적 시각을 정립하라.
- 일상의 ‘무대성’을 다시보기: 도시의 조명, 거리의 퍼포머, 광고 음향 등에서 ‘우리 주변의 공연 예술’을 발굴하라.
예술은 언제나 시대를 반영하고, 다시 시대를 반작용한다. 2025년 토니상은 그 결정적 장면 중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