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여행, 장기기증 유가족의 치유 공동체

착한여행, 장기기증 유가족의 치유 공동체
착한여행, 장기기증 유가족의 치유 공동체

장기기증 유가족의 치유는 어떻게 가능한가 – 위로의 공동체와 사회제도의 역할

장기기증은 생명을 구하는 숭고한 행위로 인식되지만, 유가족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상실의 출발점이다. 최근 GKL사회공헌재단과 사회적기업 착한여행이 공동 주관한 ‘우리가족 행복여행’은 장기기증 유가족을 위한 치유 프로그램을 통해 이 같은 이면의 감정을 조명한다. 순천과 여수 일대를 방문하며 뇌사 장기기증 유가족 70여 명을 위한 위로와 재연결의 기회를 제공한 이 프로그램은, 단순한 애도의 자리를 넘어 사회적 회복 가능성을 제시하는 계기가 되었다.

삶과 죽음을 연결하는 제도의 역설

우리나라에서 장기기증은 주로 뇌사 판정 이후 허락되며, 이는 생명을 살리는 마지막 선택으로 홍보되고 있다. 하지만 기증 이후 유족의 정서적 회복은 제도적 사각지대에 놓인 경우가 많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의 조사에 따르면, 다수의 기증 유족이 사회적 관심 부족, 외로움, 죄책감 등의 심리적 후유증을 겪는다. 기증 절차는 구조화되었지만, 이별 후의 삶은 국가나 사회로부터 충분히 설계되지 못했다는 점이 제도적 한계로 드러난다.

이에 비해 미국의 경우, 장기기증 유가족을 대상으로 한 전담 상담사 배치, 연례 추모행사, 자조 모임 지원 등을 통해 지속적 정서지원을 병행한다. 한국의 관련 제도도 점진적 개선은 이루어졌지만, 여전히 유가족 지원을 공공 복지의 ‘부수적’ 영역으로 다루는 경향이 강하다. 이는 생명 나눔의 공적 가치를 말하면서도, 그 이면에 남겨진 이들의 고통을 제도적으로 외면해온 결과이기도 하다.

기억의 방식이 치유를 결정한다

‘우리가족 행복여행’에서 조직된 테라리움 만들기, 지역 음악회 감상, 여행자 간 소통의 시간은 그 자체가 사회적 기억과 치유의 장치로 작동한다. 한 유가족은 “누군가 기억해주고, 같은 상처를 가진 사람과 연결될 수 있다는 게 그렇게 특별할 줄 몰랐다”고 전했다. 이는 우리가 죽음을 애도하는 방식이 개인의 몫이 아니라 사회의 양식이 되어야 하는 이유를 함축한다.

공정여행을 모토로 활동하는 ‘착한여행’이 프로그램 실행을 맡은 점도 주목된다. 단순한 소비 활동이 아니라 관계 기반의 여행이 치유의 방식으로 작동하는 모델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지역과 여행객, 기증 가족 간의 비폭력적이고 상호 존중의 관계는 기존의 위로 방식에서 보기 힘든 ‘관계 중심 복지’의 단면을 보여준다.

다층적 공감의 확장 필요

많은 이들이 장기기증에 감동받고, 장기기증자에게 감사를 표현하지만 유가족은 종종 낯선 침묵 속에 머무른다. 이는 우리 사회가 기증의 공익성을 강조하면서도 기증으로 인한 슬픔과 혼란을 감정의 사적인 문제로만 분리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가족들은 “자녀를 잃은 아픔을 이야기하면, 이타적인 선택을 했으니 힘내야 한다는 말이 돌아올 때 가장 외롭다”고 말한다. 기증의 가치는 사회 전체가 나누는 것이어야 하며, 그렇기에 유가족의 상실에도 사회적 공감과 제도적 보호가 따라야 한다. 기증은 공공의 생명을 위한 선택이기에, 그 여운 또한 공공이 함께 지는 것이 정당하다.

치유의 복지, 공감의 정치로

‘우리가족 행복여행’이 보여준 가치는 단순한 휴식 제공을 넘는다. 이는 심리적·사회적 치유가 단지 의료나 상담의 영역이 아니라, 제도 설계와 지역 공동체 문화의 총합이어야 한다는 점을 부각한다. 앞으로 우리 사회는 장기기증 유가족을 위한 예산 항목의 독립, 사후 상담 의무화, 지역별 치유 프로그램 연계 등 제도 개선뿐 아니라 그들과 연결되려는 시민적 감수성의 확장도 함께 이뤄야 한다.

모든 치유는 기억에서 시작된다. 생명이라는 선물 뒤에 남은 이야기를 우리가 어떻게 떠올리고, 어떤 방식으로 들어주는지가 치유 공동체로 나아가는 첫걸음이다. 사회는 기증자의 이름을 기억하면서도, 남겨진 그들의 이야기도 함께 붙들 수 있는 성숙한 정치성을 가져야 할 것이다. 오늘 우리가 기증 유가족에게 던질 수 있는 질문은 이것이다. “당신의 선택 이후, 우리는 당신 옆에 충분히 머물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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