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복지 시대의 문턱에 선 장애인 권리 – 기술과 인간 중심 서비스는 공존 가능한가
AI 기술의 도입이 다양한 분야로 뻗어나가는 가운데, 복지 서비스도 예외는 아니다. 경기도장애인복지종합지원센터(누림센터)가 개최하는 ‘2025 누림컨퍼런스’는 “AI 기반 복지 행정·서비스의 적용 가능성과 한계”를 주제로, 인공지능이 장애인 복지 현장에 어떻게 들어오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 같은 시도가 던지는 질문은 명확하다. 기술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그리고 복지는 누구에게 닿아야 하는가?
기술로 진입한 복지, 아직 낯선 사용자들
행정 시스템의 효율화를 위해 AI 기술이 접목되는 사례는 점점 늘고 있다. 특히 판별 알고리즘, 챗봇 상담, IoT 기반 재활기기, 맞춤형 교육 콘텐츠 제공 등은 복지 접근성을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번 누림컨퍼런스에서는 AI 기반 이력 추적, 개인화 서비스 설계, 디지털 접근성 향상 도구 등이 체험 부스로 제공되어 구체적인 현장 사례가 공유된다.
그러나 기술 친숙성은 계층 간 격차를 낳는다. 복지 서비스의 혁신이 기술 중심으로 이뤄지면 오히려 소외되는 이들이 있다. 특히 고령 장애인, 디지털 문턱이 높은 발달장애인, 정보 격차 지역 거주자들의 경우 AI 기술의 ‘접근 가능성’ 자체가 뚜렷한 장벽이 된다. 경계해야 할 것은 효율성만 강조하다 보면, 결과적으로 ‘복지 서비스는 있지만, 도달하지 못하는’ 아이러니에 봉착하게 된다는 점이다.
AI 도입에 대한 현장의 기대와 경계
누림컨퍼런스는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의 목소리로 구성된다. 실제 복지관 운영자, 기술기업, 지방자치 전문가, 학계 전문가 등이 참여해 실질적인 충돌 지점을 짚는다. 어떤 발표자는 AI가 행정의 정확성을 높이고 서비스를 개인 맞춤화할 수 있는 혁신이라고 강조하지만, 또 다른 패널은 “AI가 제시한 매뉴얼은 현장 민감성을 담보하지 못한다”며 기술 만능주의에 대한 우려를 제기한다. 이처럼 기술의 가능성과 한계는 현장을 담보로 삼아 균형 있게 논의돼야 한다.
뿐만 아니라, 서비스 종사자들의 업무 환경도 변화가 불가피하다. AI 기반 시스템이 도입되면 새로운 교육이 필요하고, 일부 업무는 자동화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비정규직, 단기 근무 중심의 복지 일선 인력은 또 다른 불안정성에 노출될 수 있다. 복지 기술 혁신은 단지 시스템을 고도화하는 문제를 넘어 근무 환경, 인력 구조, 조직 문화 전체의 재구성을 요구한다.
해외 사례는 무엇을 말해주는가
네덜란드와 핀란드는 이미 디지털 기반 복지행정에 AI를 접목하여 운영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핀란드 헬싱키시는 AI 알고리즘을 통해 노인복지 신청인의 응급위험도를 분석하여 선제적으로 사회복지사가 방문하도록 설계했다. 하지만 이 또한 입력되는 데이터의 공정성과 사회적 약자를 반영한 설계 기준이 없다면, 편향된 판단을 강화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들 국가는 사회적 논의와 윤리기준 마련을 병행하며 기술 도입을 조정해 나가고 있다. 단순히 기술을 ‘장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정책 설계 단계에서부터 이용자와 복지현장 전문가를 참여시킨다는 점이 차이점이다. 한국의 정책 설계에도 이러한 참여 기반 설계와 사전 검증 모델이 절실하다.
공공성과 개인 권리의 균형을 고민해야 할 때
결국 AI 기반 복지 시스템은 두 가지 축 사이의 균형을 물어야 한다. 하나는 공공 시스템의 효율화라는 행정 목적이고, 다른 하나는 장애인의 자기결정권·접근권·정보권이라는 권익 실현이다. 누림컨퍼런스가 단순한 기술 전시가 아닌 ‘기술과 사람의 접점’을 강조했다는 점은 그래서 의미가 크다.
관건은 시스템이 장애인의 삶에 얼마나 자연스럽고 지속가능하게 스며들 수 있는가이다. 일회성 체험이나 파일럿 프로그램을 넘어서는 정기적 디지털 문해력 교육, 보조기기 접근권 보장, 기술 성과의 공공재 환수 시스템 등이 병행돼야만 참여가능성과 형평성을 기대할 수 있다.
작은 변화는 어디서부터 시작될 수 있을까. 시민은 기술에 대한 맹신 대신, 기술이 누구를 위해 쓰이는지를 질문해야 하며, 정책 담당자는 도입의 속도보다 사용자의 경험과 삶을 기준으로 삼는 설계 역량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학생이나 교육자는 유사 서비스에 대한 비판적 사고와 감수성을 훈련시킬 수 있다.
기술이 복지를 대신할 수는 없다. 하지만 올바른 설계와 공동체의 참여를 통해, 기술은 사람을 더 잘 이해하고 도울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오늘 우리가 설계하는 AI 행정은 바로 우리 자신이 나이 들었을 때 마주할 복지 시스템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시스템은 지금 여기 있는 ‘누군가’가 아닌, 결국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