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청소년의 마음을 돌보는 정책은 있는가 – 국경 너머, 정신건강을 묻다
세계 난민의 날을 전후해 보도된 월드쉐어와 IRC(국제구조위원회)의 협업 프로젝트는 단순한 인도적 활동 이상의 사회적 함의를 가진다. 태국 국경 인근의 미얀마 난민캠프에서 청소년의 정신건강과 중독 문제 대응을 주제로 한 이 사업은, 위기 상황 속에서도 단절된 삶의 통합적 회복을 추구한다.
현재 한국 사회가 마주한 난민 정책 논의는 대개 이주 허용 여부나 국내 정착 지원에 머무르기 쉽다. 그러나 이 사례는 복잡한 지역 분쟁과 빈곤, 교육 단절, 젠더불평등까지 얽힌 난민 청소년의 내부 문제에 집중하면서, 정책의 외연을 ‘삶의 질 회복’까지 넓히는 방향성을 시사한다.
청소년 정신건강, 위기의 원인과 구조
미얀마 난민캠프 청소년들은 단지 학교 밖에 있는 학생이 아니라, 전쟁과 혼란 속에서 반복된 트라우마와 빈곤에 노출된 약자다. 태국 북서부 접경지역 3개 캠프에서는 약 1만3000여 명의 15~24세 청소년이 살고 있으며, 청소년 중 과반수가 불안·우울 및 알코올 의존 등의 정신질환에 노출돼 있다고 IRC는 평가한다. 특히 AUDIT 음주 문제 평가 결과, 정신건강 개입이 시급한 대상을 만 35세 이하에서 58% 이상 발견된 점은 향후 성인기로의 전이에서 심각한 장애가 예상됨을 나타낸다.
이 같은 위기는 단지 개인의 의지 부족이나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장기 난민 상태에서 교육과 경제 기회 부족이 누적되고, 지역 사회의 심리 지원 인프라는 극히 부족하다. 결국 사회적 단절이 정신적 붕괴로 전화되는 고리를 깨뜨리지 않으면, 청소년기는 그대로 '실패한 성장'이 되고 만다.
회복을 돕는 ‘다층적 개입’ 모델
이번 프로젝트는 세 가지 층위에서 개입한다. △정신건강 교육 및 AUDIT 등 선별검사로 조기에 문제를 분별하고 △요가, 미술치료 등을 통한 스트레스 해소 활동 제공 △심화 고위험군은 병원이나 전문가 네트워크에 연계하는 구조다. 무엇보다 의미 있는 것은 청년단체와 교육기관이 주체가 되어 학교 중퇴 청소년을 찾고, 캠프 내부 인력을 훈련시켜 지역 기반 돌봄체계로 확장하려는 접근이다.
이는 외부 자원이 소모되기만 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지속가능하고 자생 가능한 회복 모델을 실험하는 사례라 볼 수 있다. 국내에서도 지역아동센터나 청소년쉼터 등이 단순 이용자 서비스를 넘어, 내부 참여 자원봉사자나 당사자 역량강화 기반의 모델로 전환될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하다.
제도의 공백, 아시아 난민 청소년은 누구의 책임인가
2023년 유엔난민기구(UNHCR)의 전 세계 난민 통계에 따르면, 전체 난민의 약 40%가 18세 미만이며, 교육권 접근의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아시아권에서는 난민 인권 문제가 정치적 민감성, 국내 여론의 반감, 법적 보호 미비 속에서 뒷순위로 밀려나기 일쑤다. 한국 역시 난민인정률이 OECD 평균의 10분의 1 수준에 머물고 있으며, 심리사회적 지원은 더더욱 미미하다.
이번 월드쉐어의 접근처럼 ‘일시적 구호’가 아닌 ‘구조적 회복’에 초점을 맞춘 모델이 확장되려면, 국경을 넘는 지원 협약과 국제 NGO-지방정부-시민단체 간 긴밀한 연대가 정책 이슈로 제기돼야 한다. 특히 지역 안보 논리만으로 난민을 배제하는 시각에서, ‘미래 세대 보호’라는 공적 가치로 담론의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는 난민 청소년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
한국 사회에서 난민은 여전히 추상적인 존재다. 미디어 모집단에 자주 등장하는 중동이나 아프리카 출신 난민은 낯설고, 동남아·남아시아 출신 이주민은 ‘노동력’으로 대상화되기 쉽다. 그러나 15세~24세의 청소년은 교육을 통해 공동체 시민으로 성장할 잠재력을 지닌 세대이다. 그들의 정신건강 회복은 단순 의료 또는 구호가 아닌, 삶의 '이음'을 위한 사회적 투자라는 관점이 필요하다.
캠프 내부에서 청년 당사자들이 병원 연계 과정에서 직접 조율하거나, 미술·요가 세션을 통해 자아 회복에 참여하는 사례는 일종의 '회복적 시민참여'를 보여준다. 이는 국내 소외 청소년 정책을 재점검하는 실마리로도 기능할 수 있다.
대규모 전쟁이나 정치난민 문제는 한 국가가 해결할 수 없는 의제를 품는다. 그러나 캠프 안에서 불안을 진단하고, 미술 한 장으로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제도가 존재하는지는 각 사회의 성숙도를 드러내는 거울일 수 있다. 우리가 걱정해야 할 것은 난민 청소년이 우리 사회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의 무관심이 그들을 완전히 놓아버리는 것이다.
정책 설계자와 교육자, NGO 활동가, 지역사회 구성원 모두가 이런 질문을 되새겨볼 시점이다. “내가 사는 사회는, 마음이 가장 약해진 청소년을 어떻게 돌보고 있는가?” 이는 단지 국경 너머 이야기가 아니라, 같은 청년 세대, 같은 지구 시민으로서의 책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