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심리적 면역력을 높이는 법 – 에니어그램을 통한 정서적 회복 전략
코로나19 이후 전 세계적으로 ‘정신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가운데, 이제는 질병만이 아니라 감정의 언어를 읽고 다루는 역량이 가정에서도 요구되고 있다. 특히 사춘기에 접어들기 전후의 자녀를 둔 가족에게는 감정의 균형과 대화의 기술이 곧 건강 관리의 일부다. 최근 서대문구청소년상담복지센터가 운영한 ‘우리가족 에니어그램 마음여행’은 바로 이런 흐름에 발맞춘 가족 정서 회복 프로그램의 좋은 예다.
감정의 언어를 이해하는 첫걸음, 에니어그램
에니어그램은 9가지 성격 유형으로 인간의 감정, 본성, 행동 패턴을 설명하는 심리 도구로 알려져 있다. 단순한 성격 테스트를 넘어, 자신과 타인의 감정 동기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데 효과적이다. 이번 ‘가족 마음여행’ 프로그램 역시 아이와 부모가 함께 참여하여 각자의 성격유형을 살펴보고, 성향의 차이를 마주하면서도 서로의 강점과 한계를 인식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우리는 자주 이런 질문을 지나쳐온다. “내 아이는 왜 그렇게 반응할까?”, “나는 왜 계속 같은 방식으로 화를 낼까?” 에니어그램은 이 질문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자기이해와 가족 간 이해는 갈등을 예방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정서적 거리감을 줄이는 강력한 심리적 면역력을 만든다.
가족 내 갈등은 예방할 수 있을까?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보호막이 되기도 하지만, 가장 쉽게 상처를 주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특히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중학교 시기 자녀를 둔 가정은 자아 정체감을 형성하는 청소년기 특성상 갈등의 잦은 온상지가 된다. 하지만 갈등은 피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적절히 ‘다루고 회복’해야 할 관계의 한 과정이다.
이번 프로그램의 목적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각자의 성향을 이해하고, 갈등이 일어나는 지점을 알아차려, 감정이 앞서 터지기 전에 대화로 전환하는 능력—이른바 ‘회복적 대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다. 실제로 참가자들은 “자녀가 자기 성격을 설명하는 것을 들으며 아이를 새롭게 바라보게 됐다”며, 소통의 통로가 열린 경험을 공유했다. 가정 내 정서 소통은 자아 존중감 형성의 출발점이며, 정신건강의 중심축이다.
정서적 웰빙은 생활 습관의 결과
우리는 ‘건강’ 하면 종종 혈압, 체중, 식단처럼 눈에 보이는 수치를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정서적 웰빙 역시 건강의 중요한 축이다. 스트레스는 부정적 감정으로 시작되며, 감정의 해소 실패는 심장박동, 수면 패턴, 면역력 저하로 직결된다. 미국 NIH는 아동과 청소년기 스트레스가 장기적으로 우울, 분노 조절 장애, 공감능력 저하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에니어그램과 같은 자기성찰 툴은 식단 조절이나 운동만큼이나 중요한 정서적 셀프 점검을 가능하게 한다. 또한, 가족이 함께 정서 기술을 익히는 훈련은 ‘예방 중심의 정신 건강 관리’라고 볼 수 있다.
심리적 회복력은 가정에서 시작된다
심리적 회복력(resilience)은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다시 균형을 찾는 능력이다. 이는 유전적 요인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 길러지는 요소다. 정기적인 가족 대화, 감정 표현을 연습할 수 있는 체험 활동, 각자의 차이를 축으로 한 공감의 시간은 이 회복력을 키우는 지름길이다.
서대문구청소년상담복지센터처럼 지역사회 기반의 전문 상담기관은 가정과 학교를 잇는 긴밀한 연결 고리로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심리적 면역력이 없는 가정에서는 어떤 예방도, 치료도 장기적인 효과를 바라기 어렵다.
당장 시작할 수 있는 실천 전략
오늘부터 실천해보기 좋은 한 가지는 ‘나의 감정 온도 체크’다. 하루 중 가장 감정의 파고가 컸던 순간을 떠올려 보고, 그때 내 감정 정체가 무엇이었는지 단어로 적어보는 습관을 들여보자. 자녀와 함께 ‘오늘 나를 가장 기쁘게/속상하게 한 일’을 나누는 짧은 질문 하나로 작은 변화가 시작된다.
가정은 정서의 첫 학교다. 성격 차이를 ‘오류’가 아닌 ‘차이’로 이해하려는 노력은 건강한 관계의 첫걸음이자, 정신적으로 안전한 환경을 만드는 가장 실용적인 예방 전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