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리스 K-팝의 도전 – ‘XLOV’가 던지는 정체성의 질문과 새로운 아름다움의 기준
서울 한복판, 전광판 속 영상은 팝의 리듬이 아닌 새로운 성찰을 비추고 있었다. 케이팝 사상 최초의 젠더리스 그룹 ‘XLOV(엑스러브)’가 두 번째 싱글 앨범 ‘I ONE’으로 돌아오며 던진 메시지는 단순한 컴백 그 이상이다. 이건 음악이라기보단 선언, 그리고 우리가 간과해온 ‘존재의 다양성’에 대한 따뜻하고도 단호한 각성이다.
어쩌면 음악은 늘 이성보다 먼저 감정을 건드리는 예술이라, 시대를 바꾸는 일은 종이 아닌 멜로디에서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XLOV의 등장은 그런 문화적 흐름의 작은 진동이자, 한국 대중문화에 제기된 정체성 해체의 실험이다.
정체성에서 벗어난 존재로서의 나
‘나는 단 하나, 그리고 너도 그래(You are the 1&Only)’라고 노래하는 이들의 목소리엔 자신감보다 깊은 따뜻함이 흐른다. 데뷔곡 ‘I’mma Be’로 자기 선언을 했던 그들은 이번 싱글 ‘I ONE’에서 아예 그 선언을 “모든 존재는 대체 불가능하다”는 방향으로 확장했다. 타이틀곡 ‘1&Only’는 리듬감 있는 아프로비트에 실려 “억누르지 말고 불태우자”는 진심을 담는다. 그것은 방황하고 흔들리는 누군가에게 건네는 응원이고, 우리 안의 ‘검열된 자아’에게 보내는 해방의 초대장이다.
이번 앨범은 구성부터 상징적이다. ‘1’이라는 숫자로 통합된 3곡의 음악과 그 악기 버전으로 채워진 총 6곡. 멤버 우무티가 전곡 작사에 참여했단 점은 단순한 상품을 넘어선 ‘자신의 서사’로써의 음악임을 뚜렷이 드러낸다. 이들의 음악은 케이팝 시스템 안에서 만들어진 동시에 그 시스템을 향해 질문을 던지는 이중적 정체성을 안고 있다.
무대는 경계를 지운다
13일 마포구에서 열린 쇼케이스 현장은 ‘공연’이라기보단 하나의 선언장이었다. 전광판에 공개된 뮤직비디오, 글로벌 동시 스트리밍, 팬덤 ‘EVOL’과의 실시간 이벤트는 대중과의 경계마저 흐릿하게 만들었다. 엑스러브는 ‘팬들과 함께 만든 세계 안의 존재들이 모두 특별하다’는 메시지를 실제 환경에서도 실현해낸 것이다.
또한 이들의 무대엔 남성과 여성이라는 구분이 없다. XLOV는 더 이상 성별로 픽션을 꾸미지 않으며, 그 자체로 새로운 존재감의 정의를 제시한다. 이 흐름은 단케이팝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미 해외에서는 샘 스미스, 크리스틴 앤 더 퀸스 등 다양한 젠더 아이덴티티를 수용하는 아티스트들이 기존의 ‘스타성’ 패러다임을 무너뜨리고 있다. 한국에서도 이제 이러한 흐름이 대중적으로 등장한다는 점은 문화적 다양성의 새로운 전환점이다.
어쩌면 나는, 우리 모두는 ‘하나’일 수 있다
‘I ONE’은 단절보다 연결, 분리보다 공존을 이야기한다. 젠더 구분을 넘어서 ‘각자의 불타는 아름다움’으로 존재하자는 이들의 주장 속에서, 우리는 현대인이 처한 또 하나의 외로움을 본다. 선택을 강요받고, 정체성을 규격화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사회. 그 속에서 “그냥 나답게” 존재하는 일이 얼마나 희귀한 용기인지 새삼 느끼게 된다.
예술은 때때로 정답이 아니라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여전히 ‘누가 무엇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사회적 틀 안에서 살아가지만, XLOV는 그런 프레임 바깥에서 질문을 시작한다. ‘나는 누구인가’, ‘나를 규정짓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대상은 정말 나여도 되는가’.
아직 늦지 않았다. 당신의 ‘1&Only’를 찾아낼 시간은 지금 여기다.
이번 주, 음악 하나쯤은 가사까지 천천히 곱씹어 들어보자. 무작정 흥얼거리기보다 ‘이 노래가 내 존재를 어떻게 감싸주는지’에 집중해보는 것이다. 또는 누군가에게 “당신은 유일하다”고 한번 말해보는 것도 좋다. XLOV의 노래처럼, 그건 새로움이 아니라, 우리가 잊고 살았던 본래의 따뜻함일 테니까.
⟪감상 그 이후를 위한 질문들⟫
- 나는 지금 어떤 프레임 아래에 살아가고 있는가?
- 나에게 ‘존재의 원형’은 어떤 이미지로 남아 있는가?
- 예술이 삶을 위로한다고 할 때, 그것은 어떤 방식으로 가능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