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휴식 장소를 화장실로 삼는 이들이 있다. 이른바 ‘화캉스(화장실+바캉스)’를 즐기는 사람들이다. 변기에 앉아 스마트폰을 보거나 영상을 시청하면서 한참을 머무는 습관은 잠시 편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항문 건강에는 좋지 않다.
화장실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 배변과 관계없이 항문 주변에 지속적으로 부담이 가해질 수 있다. 여기에 변을 보기 위해 과도하게 힘을 주는 습관이나 변비가 겹치면 항문 혈관과 조직에 가해지는 압력이 커진다. 미국대장항문학회(ASCRS) 역시 치핵 환자에게 변기에 머무는 시간을 줄이고 힘을 과도하게 주지 않는 등 올바른 배변 습관을 갖도록 권고하고 있다.
흔히 ‘치질’이라고 부르는 질환은 하나가 아니다. 의학적으로는 항문과 직장 주변에 발생하는 치핵, 치열, 치루 등을 통칭하는 표현으로 사용된다. 이 가운데 가장 흔한 것이 치핵이다. 치핵은 항문관 주변의 혈관과 결합조직으로 이뤄진 정상적인 구조물이 늘어나거나 증상을 일으킨 상태를 말하며, 위치에 따라 내치핵과 외치핵으로 나뉜다.
내치핵은 배변 시 선홍색 출혈이나 항문 밖으로 조직이 빠져나오는 탈출 증상이 흔하다. 초기에는 배변 후 자연스럽게 들어가지만 진행 정도에 따라 손으로 밀어 넣어야 하거나 들어가지 않는 상태로 이어질 수 있다. 외치핵은 항문 바깥쪽 피부 아래에 생기며 혈전이 발생하면 갑작스러운 통증과 단단한 덩어리가 나타나기도 한다.
치열은 딱딱한 변을 배출하거나 반복적으로 힘을 주는 과정에서 항문관 점막이 찢어지는 질환이다. 배변할 때 날카로운 통증이 나타나고 이후에도 통증이 이어질 수 있다. 치루는 항문 안쪽과 주변 피부 사이에 비정상적인 통로가 만들어진 상태로, 항문 주변에 반복적으로 고름이 나오거나 피부가 붓는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세 질환은 원인과 치료 방법이 서로 다른 만큼 증상만으로 구분하기보다 진료를 통해 정확한 상태를 확인해야 한다.
치질 증상이 있다고 해서 처음부터 수술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변비나 설사처럼 배변 습관이 불규칙한 경우 이를 조절하고, 식이섬유와 수분을 충분히 섭취하며, 배변할 때 과도하게 힘을 주지 않는 것부터 시작한다. 증상의 정도에 따라 약물이나 좌욕 등 보존적 치료를 시행할 수 있으며, 생활습관 개선만으로 호전되지 않거나 탈출과 출혈 등이 반복되는 경우에는 다른 치료법을 고려한다.
수술이 필요하다면 원형자동문합기(PPH)를 우선 고려한다. PPH는 직장 안쪽에서 원형으로 조직을 절제하고 동시에 봉합해 늘어진 조직을 위쪽으로 당겨 고정하는 방식이다. 발병 부위를 절제한 후 주변 피부를 당겨 실로 봉합하는 기존 절제술에 비해 통증이나 출혈, 흉터 우려가 적고 회복이 빠른 편이다. 하지만 모든 치핵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치핵의 위치와 탈출 정도 등을 확인해 적합성을 판단해야 한다.
원흥장항외과 최규성 대표원장(대장항문외과 세부전문의)은 “치질은 흔한 질환이지만 항문 출혈이나 통증을 단순히 치질로 생각하고 방치해서는 안 된다”며 “배변 습관을 바로잡는 것이 기본이며 증상이 반복되거나 배변과 관계없이 출혈, 통증, 덩어리 등이 나타난다면 정확한 진단을 받아보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치질 재발을 막으려면 화장실에서 보내는 시간부터 줄이는 것이 좋다. 스마트폰이나 책을 보면서 변기에 오래 앉아 있는 습관은 피하고, 배변 욕구가 있을 때 무리하게 참거나 반대로 변이 나오지 않는데도 오래 힘을 주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식이섬유가 풍부한 음식을 섭취하고 충분한 수분을 보충하는 것도 변을 원활하게 배출하는 데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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